한국 전통 가옥의 분류 방법
1. 새로운 분류 방법의 시도
민가의 집 구조를 분류하는 방법은 여러 일본 학자들에 의해 시도되고 정리되었지만, 이들의 이론은 많지 않은 자료를 바탕으로 직관적으로 정리된 느낌이 없지 않다. 그들이 사용한 방법은 겨우 몇십 채의 민가를 분류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수백 채를 분류하려 하면 금세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예전 방법들은 대부분 어떤 지역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집들이 모여 있다는 ‘지역의 특성’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한 마을의 모든 민가를 조사해 보면, 서로 다른 집 구조가 여러 가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한 마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찾아보고, 그 위에 다른 지역에서 나타나는 구조를 덧붙여서 분류해 보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런 구체적인 대안으로 필자는 집 구조의 크기나 기능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기준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시하면 더 쉽게 관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시대가 변하면서 생겨난 새로운 공간의 분리는 ‘양식’이라고 한다.
둘째, 경제적 수준에 따라 서로 다른 구조는 ‘형식’이라 부른다.
셋째, 지역이 달라서 생긴 특별한 구조는 ‘형(型)’이라 한다.
이렇게 집 구조를 양식, 형식, 그리고 형(型)으로 나눠보면, 크게는 중세양식과 근세양식으로 나뉘고, 그다음에는 대농형식, 중농형식, 소농형식으로 나뉘며, 더 작게는 일자형, 꺾은자형, 양통형, 겹집형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 시대와 관련 있는 ‘근세양식’은 최근에 지어진 대부분의 집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집들은 옛날의 전통적인 건축 기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지어진 것이 많고, 계층 간 구분도 뚜렷하지 않으며, 모두 비슷한 형태로 지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 집들의 기본 형태는 소농형식의 4칸짜리 일자형 집이나 퇴사랑집(부엌이 바깥으로 붙은 형태)으로 보이지만, 거실과 안방 사이에 자주 들어가는 대청은 중농이나 대농형식의 꺾은자형 집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므로, 옛 시대의 여러 형태가 섞여서 발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양식의 집은 이 마을에 13채가 있어서 전체의 3분의 1 정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중세양식은 해방 이전에 지어진 집들로, 전통적인 방법으로 지어진 집을 말한다. 이 마을에는 중세양식에 속하는 집이 26채가 있어서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이로 보아, 이 마을의 건축양식은 여전히 예전 방식이 중심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세양식은 집 구조가 다양해서 다음 기준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첫째, 큰 농가의 집은 ‘대농형식’이라 하고,
둘째, 중간 농가의 집은 ‘중농형식’이라 하며,
셋째, 작은 농가의 집은 ‘소농형식’이라 한다.
넷째, 안채의 구조는 3칸 일자형, 4칸 일자형, 퇴사랑 일자형 등으로 나뉜다.
소농형식의 집은 살림방이 있는 안마당과 헛간채로 이루어진, 가장 가난한 계층의 집이다. 대부분 두 채로 이루어져 있지만, 가끔 외채가 있거나 세 채로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안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헛간이나 변소 같은 부속 건물로 되어 있다. 규모가 작은 집에서 주로 볼 수 있고, 짓는 방법도 흙벽이나 간단한 나무 맞춤을 사용하는 등 예전 방식이 많으며, 기둥 사이 간격도 일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마을에는 이런 집이 16채로 가장 많다.
중농형식의 집은 살림방이 있는 안채 외에 사랑채가 따로 있는 집이다. (소농형식의 사랑방은 대부분 창고로 쓰이지만, 이 형식에서는 실제로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음.) 대부분 세 채로 구성되지만 두 채짜리도 있다. 안채는 살림방으로, 사랑채는 사랑방과 헛간 또는 사랑방과 부엌, 대문간 등으로 구성되며 헛간채가 따로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집은 중간 수준의 농가에서 주로 짓고, 전통적인 건축 방식에 따라 기둥 간격이 비교적 일정하며 집 규모도 꽤 크다. 이 마을에는 이런 집이 4채밖에 없어 가장 적은데, 그 이유는 대부분 중농형식의 집이 근대양식으로 다시 지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대농형식의 집은 지금도 쓸 만해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소농은 경제적으로 다시 짓는 것이 어려워 그대로 살고 있다.
대농형식의 집은 살림방만 10칸 이상이고, 방마다 역할이 다르며 농사일을 위한 바깥마당도 따로 있는 집이다. 안채에는 안방 외에 건넌방과 부엌방이 따로 있고, 사랑채에는 사랑방, 대문간, 헛간이 함께 붙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또 바깥마당에는 헛간채나 가축우리도 따로 있다. 이런 집은 기둥이 네모지고, 마루가 높으며, 기둥 간격도 길고, 기둥 머리 연결 방식도 정교하다. 창이나 문도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많다. 이 마을에는 이런 집이 6채 있다.
2. 계층 시대별 분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 마을의 집 평면을 나누는 데에는 시대별, 계층별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전국의 집들을 이런 기준으로 나누려고 하면, 지역마다 다른 경제적·사회적 조건과 특색이 더해지기 때문에 훨씬 복잡해진다.
거의 모든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집은 여전히 옛날 방식의 집들이고, 최근 방식의 집들도 꽤 많은 편이다. 옛날 방식의 집들은 다시 계층에 따라 평면 구성에 차이가 보인다. 그중에서도 옛날에 하인처럼 외따로 살던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소농 계층의 집과, 지방 유지였던 대농 계층의 집은 지역이 달라도 거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자영농이었던 중농 계층의 집들은 지역마다 독특한 평면을 보여서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다.
소농형식의 집은 숫자가 적지만, 같은 구조가 여러 지역에 널리 퍼져 있다. 반면 대농형식의 집은 지역적 특성보다는 그 집 주인의 취향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또 근세양식의 집은 중농형식에서 출발해 소농과 대농형식을 섞으면서 발전해 왔고, 이런 경향은 점점 전국적으로 비슷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옛날 방식인 중세양식의 소농형식 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3칸으로 된 외통형 집이고, 다른 하나는 4칸이나 6칸으로 된 양통형 집이다. 이 집들의 특징은 방 외에 다른 용도의 공간이 따로 없고, 전부 살림방으로만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양통형 집은 분포된 지역의 특성을 보면 하인보다는 소작농이 살았던 집으로 보이며,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대농형식의 집은 대부분 ‘입구자(口)’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튼입구자(ㄱ+ㄴ자)인지, 마당이 있는 뜰집(ㅁ자형 집)인지만 다르다. 사회가 비교적 안정된 태백산맥 서쪽의 중부 평야 지역에서는 ㄱ자와 ㄴ자가 이어진 튼입구자집이 많고, 제주도와 남해안 지역에서는 일자형 구조가 연결된 튼입구자집이 흔하며, 산간 지역처럼 불안정한 곳에서는 마당이 넓은 뜰집이 많이 지어졌다. 하지만 이 집들은 기본적인 구조는 같고, 마당 크기만 조금씩 다를 뿐이라고 볼 수 있다.
중농형식, 즉 자영농 계층의 집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는 양통형 집이고, 둘째는 외통형 집이 몇 채 모여 있는 구조이며, 셋째는 남부 지방에 분포하는 겹집 구조다. 다만, 양통형 집도 여러 채가 모여서 구성될 수 있고, 외통형이나 겹집형도 몇 채가 이어질 경우 ㄱ자나 ‘二’자, 튼ㄷ자 모양으로 배치되며, 곱은자 구조의 집도 일자집이 합쳐져 튼ㄷ자 모양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특이한 경우로는 광주산맥 동남쪽 산간지역과 서해안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ㄷ자집, 똬리집, 사방집 등이 있다.
최근 방식인 근세양식의 집은 전국적으로 ㄱ자 모양이 가장 흔하며, 특히 안방 쪽이 앞으로 튀어나온 구조가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는 사랑방 쪽이 앞으로 나온 형태가 많다. 이런 집들은 양통형과 겹집 구조가 합쳐진 것처럼 보이는 평면 구성을 가지고 있다.
3. 발전적 분류
이렇게 조사하고 분류한 민가의 평면을 살펴보면, 민가도 마치 동물이나 식물의 계통도처럼 체계적으로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지금의 인간이 미생물에서 진화해 유인원을 거쳐 등장했다고 보는 것처럼, 민가의 평면도 일정한 발전 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민가를 좀 더 체계적으로 분류해 보면, 비록 고대 민가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더라도 지금 남아 있는 자료를 통해 옛날 민가의 평면 형태를 추정할 수 있다. 이렇게 민가 평면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단계를 찾아냄으로써, 우리는 민가가 발전해 온 원리를 유추할 수 있고, 이런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만 민가의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역사 속 발전에는 보편적인 흐름과 지역적인 특성이 함께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민가의 평면을 분류할 때 지역적인 특성만을 강조하지 않고, 오히려 역사 전체에 공통되는 발전 원리를 찾아내고자 한다. 물론 건축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독특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이는 결국 그 시대와 지역에서 가능한 생산력의 범위 안에서 자연환경에 적응해 생긴 것이고, 사회가 발전하고 생산력이 커지면 건축도 점차 자연환경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지방적 특색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에 따라 새로운 분류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즉, 전국을 하나의 큰 범주로 보고, 집의 크기와 시설 수준에 따라 세로 방향으로 나눠보려는 것이다.
지역 특성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오히려 민가가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를 바탕으로 전국의 경제적·자연적 상황을 살펴보면 이렇다.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서해안 지방에서는 외통형 집이 기본이 되고, 거기에서 쌍채형이나 ㄷ자형, ㅁ자형 구조로 발전해 왔으며, 계층 간 인구 분포도 비교적 고르게 나타난다. 함경도 지방과 태백산맥 동쪽인 영동 지방, 또 태백산맥을 따라 이어지는 산간지역에는 양통형 집이 주를 이루며, 중간 계층인 자영농의 집이 많고, 소농이나 대농의 집은 많지 않다. 반면, 영남과 호남의 남해안 지방에서는 겹집이 주류이며, 계층 간 차이가 커서 중농 계층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소농형 집과 소수의 대농형 집으로 구성되어 있는 모습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