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속 문화

어민의 신앙과 제사

solid-info 2025. 4. 9. 15:01

어민의 신앙과 제사

 

 

 어민들은 주로 용왕이나 도깨비를 믿는다. 그러나 유교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대부분의 어촌에서는 마을의 중심이 되는 근엄한 곳에 사당을 세우고,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그 지방의 개척자를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 예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추측되는 것은, 어민들의 원시적인 신앙 대상 선정에 있어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이러한 일에 중심이 되는 이들은 한문 지식이 있고 어느 정도 유교정신에 물든 사람들이기 때문이라 본다.

 

 대체로 배를 타고 여러 날 동안 바다 위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들은 용왕을 믿고(도깨비도 함께 믿는다), 해안 가까운 일정한 장소에 그물을 설치해서 고기를 잡는 어민들은 용왕도 믿지만 도깨비를 주로 믿는다. 이들은 모두 산신(산의 신)은 금기로 여긴다.

 

 배를 타고 여러 날 바다에서 일하는 어부들은 바다의 상황이나 고기의 움직임이 용왕의 기분에 따라 좌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배 안에서 가장 윗자리에 해당하는 곳에 용왕의 신주를 모셔 두고 출어할 때나 고기의 상황에 따라 수시로 제사를 지낼 뿐 아니라, 돼지머리나 다른 제물을 바다에 던져 용왕을 달래기도 한다. 또한 연안에서 일정한 장소에 그물을 설치해 고기를 잡는 어민들은 용왕도 믿지만, 고기떼를 그물 안으로 몰아넣어 주는 것은 도깨비의 장난이라고 여긴다. 넓은 바다에서 고기떼가 피할 길도 많고 많은 사람들이 그물을 쳐 놓았는데도 자기 그물에만 고기떼가 몰려드는 일은 도깨비와 친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 하여, 종종 돼지머리를 그물 입구 근처 물속에 넣어 용왕도 달래고, 어망 가까운 육지의 바위 위에는 작은 집 모양의 초가집이나 평평한 돌을 쌓아 만든 도깨비 집에 메밀로 만든 죽을 수시로 넣어 두기도 하며, 어망 근처에 뿌리기도 한다. 도깨비는 메밀죽을 좋아한다고 믿는다.

 

 대체로 이러한 신들 중 하나의 신이 모든 것을 다스리는 전능한 존재로는 여기지 않는 듯하다. 이는 각 어촌에서 정초에 지내는 제사를 보면 각 신에게 개별적으로 고루 지내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그 예로 전라남도 여수시의 일부인 종포는 순수한 어민들로 이루어진 마을로서 수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관습에 따라 정초에 제사를 지낸다. 제주(제사 담당자)는 깨끗하고 무사고인 남자를 1년 전에 선출하여 전담하게 하는데, 뽑힌 제주는 1년 동안 삼가며 외출도 조심한다. 음력 섣달이 되면 사는 곳에 금줄을 쳐서 외부인이나 깨끗하지 않은 사람의 출입을 막고, 정월 초하루 밤에는 해가 진 뒤 깨끗한 물로 목욕하고 마음가짐을 다듬어 마을을 지켜주는 당신(사당에 모신 신)을 위한 제사에 참여하는데, 이때 마을 청년들로 이루어진 농악대가 이를 도와 굿으로 신을 달래고 밤 10시경 제사를 마친다. 이후 농악대는 바닷가로 내려가 각 어민 가정에서 한 상씩 준비한 제사상을 바닷가에 늘어놓고 용왕을 달래는 별신굿을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간다. 이때는 무당이 제주가 된다. 또 음력 3월 15일에는 풍어와 무사고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마을 제사는 남해안 어촌에서는 공통된 행사로 지방에 따라서는 정월 보름에 당산제와 별신굿을 지내는 곳도 있다.

 

 배가 바다로 나갈 때는 고사를 지내는데, 배에는 화려한 대어기(풍어를 기원하는 깃발)를 여러 개 달아 장식하고, 먼저 배 위에서 용왕에게 풍어와 무사고를 비는 무당의 제문에 따라 선장이 제주가 되어 제사를 지낸다. 이 절차가 끝나야 신에게 고했다고 보고, 별다른 일 없이 출발한다. 출발할 때는 메밀죽을 물에 넣어 도깨비를 달래고, 돼지머리를 넣어 용왕을 달래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이다.

 

 배를 만들 때도 의식을 치르는데, 첫 번째로 배 밑을 놓을 때 수신제(물의 신, 곧 용왕에게 지내는 제사)를 지낸다. 즉, 배의 밑바닥이나 중심 뼈대를 놓고 앞쪽에는 배머리 목재를, 뒤쪽에는 배꼬리 목재를 세우고 지내는 제사이다. 두 번째 제사는 배의 몸체가 거의 완성되어 갑판을 깔았을 때 지내는 것으로, 이는 주로 배를 만드는 목수를 위로하기 위한 간단한 제사이다. 세 번째, 마지막 제사는 진수식으로서 배가 완성되어 바다에 띄우는 의식이다. 이때는 배 위에 제단을 차리고 풍어와 무사고를 기원하는 무당의 의식과 함께, 시운전을 겸하여 풍물놀이와 축제가 함께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