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속 문화

연적과 책상

solid-info 2025. 4. 18. 11:43

연적과 책상

 

1. 연적

 연적은 문방구 중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서재에서 글을 쓸 때, 먹을 갈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적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이 연적은 대개 질그릇으로 만들어지며, 특히 고려청자로 모양이 아름답게 제작된 연적을 책상 위에 올려 놓으면 서재의 분위기를 한층 고급스럽게 만든다. 『연보(硯譜)』 1권에서는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벼루를 만드는 좋은 돌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으며, 또한 고사에 대한 기록도 있다.


 원래 벼루에 들어 있는 먹은 마르지 않도록 잘 보관해야 하며, 좋은 돌로 만든 벼루일수록 그 먹이 잘 날아가지 않고 오래 남아 있다. 고려청자로 만든 연적은 매우 귀중한 보물로 취급되며, 대가집 서재에는 반드시 놓여져 있는 품목이다. 좋은 연적일수록 물이 잘 마르지 않고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다.

 

 청자 연적은 그 당시 귀중한 물건이었기에 애호가들은 문방구 도구들을 가보로 간직하려 했던 것이다. 『연전(硯箋)』 4권은 송나라의 고사손이 편찬한 책으로, 그 안에는 여러 종류의 연적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1권에서는 단연이를, 2권에서는 흡연(먹을 모은 그릇)을, 3권에서는 여러 연적의 훌륭한 예들을, 4권에서는 연적에 관한 시문을 소개하고 있다. 소식(蘇軾)은 「아직옥당(直玉堂)」에서

 

"愁侵硯滴初含凍 喜入燈火欲鬪硏"

 

이라고 읊었다. 이는 '먹물이 처음에는 얼음처럼 굳어 있지만, 등불을 켜면 그것이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기에 서울 근교에 독서당을 만들어 학자들을 모아 사가독서를 시켰다. 이곳에 모인 선비들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 속에서 학문을 닦았으며, 그 중에는 국가에서 내린 벼루와 연적을 보관해 두고 썼던 경우도 있었다.

 

 

2. 책상

 책상은 흔히 '궤안(机案)'이라고 불린다. 옛날에는 궤안을 장만하면, 일개 도필소인(글을 쓰고 책을 만든 사람)은 '정당히 궤안의 아전(직원)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이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책상과 같은 도구를 준비해 두고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들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당시에는 이 궤안을 온돌방에서 사용했으므로 대형 책상이 필요하지 않았고, 작은 벼룻집 정도만 있으면 거기서 붓, 벼루, 연적, 종이 등을 준비하여 사용했다. 이런 도구들을 통틀어 '궤탑(机楊)'이라고 불렀다.

 응거는 「여시랑서장사향(與侍郞書長思香)」에서


"悲風起於閨闥仁慶蔽於机"

 

라고 하였다. 이는 '슬픈 바람이 궁궐의 문을 지나고, 즐거운 기쁨이 책상 위에 가득하다'는 의미로, 책상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주인공의 심상과 직접 연결된다는 뜻이다. 책상에서 글씨를 쓸 때, 글쓴이의 감정이 더욱 간절해지고, 그 감정이 글에 그대로 나타난다고도 해석될 수 있다.


 궤안은 여러 가지로 중요한 물건이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이를 알리기 위해 상청(상례를 위한 방)을 만든다고 한다. 이는 죽은 사람의 넋을 위로하며 조석으로 정성을 다해 전하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인데, 『순자(荀子)』 정명(正名) 편에서도 이를 '양형(養形)'이라 하여 한 형체를 모시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궤안을 만들 때도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고려 시대의 세도였던 최충헌의 동생 최충수는 딸을 시집보낼 때 갖가지 가구들을 만들었고, 이를 본 최충헌은 집안 망신이라고 생각하여 동생을 멀리 임진강 남쪽으로 내쫓았다. 이는 당시 가구의 중요성과 그에 대한 가치가 얼마나 컸는지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