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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가구 소개 (각게수리, 농, 함)

1. 각게수리 각게수리는 여닫이문 안에 여러 개의 서랍이 설치된 일종의 금고로서, 귀중한 물건이나 문서를 보관하는 데 사용하였으며 약장으로도 쓰였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37년(1711) 8월 5일 기록에 따르면, 조이중이 통제사로 있을 당시 각기소리 8개를 만들어 그 안에 귀한 물건을 넣어 신에게 보낸 일이 문제가 되었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숙종 시대에 이미 각기소리를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각게수리는 『증보산림경제』의 살림살이 관련 기록인 ‘가정편’에서는 일본의 ‘왜궤’를 ‘갓게슈리’로, 같은 책의 ‘잡방’에서는 역시 왜궤를 ‘갸계소리’로 표기하고 있다. 헌종 때 기록된 『재물보』에서는 중국의 소형장을 ‘각비슈리’라고 하였고, 영조 51년(1775)에 간행된 『역어유해보』에서는 천안주..

민속 가구 소개 (궤와 옷장)

1. 궤 나무로 만든 직사각형 상자를 말한다. '장기(臟器)를 세운다'는 뜻에서 '수궤(竪櫃)'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그에 대응하여 눕혀놓은 궤라는 뜻으로 '와궤(臥櫃)'라고도 한다. 궤에는 윗다지와 반다지(앞다지)의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윗판(천판)을 앞뒤로 잘라서 앞쪽을 문으로 삼은 것은 윗쪽에 문이 있다 하여 '윗다지'라 하고, 앞면을 위아래로 둘로 나눠 윗부분을 문으로 삼은 것은 '반다지' 또는 '앞다지'라 한다. 사람들이 흔히 '돈궤'라 부르는 대형 윗다지는 실제로는 잘못된 이름이다. 돈궤는 겉모습은 윗다지와 같지만 크기가 훨씬 작고, 윗판의 잘린 부분 가운데에 엽전이 들어갈 수 있도록 길쭉한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윗다지는 책이나 문서, 옷, 천, 말린 식재료, 그릇, 제사에 쓰는 그릇,..

한국의 주택 공간 (안방, 대청, 사랑방)

1. 안방 일반적인 한국 주택의 공간은 여성이 거처하는 안방(안채)과 남성의 거실인 사랑방(사랑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집안 살림을 맡은 아내가 나이든 어머니를 모시고 출가하지 않은 딸과 어린 자녀들과 함께 살며, 가족의 음식 준비와 옷 마련 등 살림을 총괄하던 가정의 중심 공간으로, 직계가족 이외의 남성은 들어올 수 없는 닫힌 공간이다. 안방은 안주인의 생활이 대부분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신분에 알맞게 꾸며졌고 서민의 집과 상류층의 집에 따라 그 규모와 시설에 차이가 있다. 안방은 대체로 두 칸으로 넓게 활용하지만, 때로는 그 가운데에 장지를 달아 여닫을 수 있게 하기도 한다. 규모가 큰 집의 경우에는 방 뒤쪽에 반 칸 넓이의 작은 방을 들여 장이나 농 같은 것을 보관하고, 조금 더 격..

한국의 전통적인 손님맞이 방식

1. 일상적인 손님맞이 남자 손님이 오면 사랑방에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 예의이지만, 여자 손님은 으레 안방에 모신다. 또 어린 손님이나 친정 식구처럼 가까운 사이라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손님이 찾아오면 안방에서 맞이한다. 어느 지방에서나 손님을 따뜻하게 맞는 것이 우리나라의 풍습이며, 요즘에는 떡이나 고구마, 과일 등을 내놓기도 한다. 손님을 모시는 자리는 보통 따뜻한 아랫목이지만, 여름에는 시원한 문 앞자리가 되기도 한다. 웬만한 손님이면 밥이나 술을 대접하는데, 이런 손님 접대 풍습은 잘사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비슷하다. 그러나 살림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은 친구를 집으로 맞기보다는 직접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접하기 까다로운 손님은 사돈이라 할 수 있다. 안사돈이 오면 안방..

한국 민속 환경 : 잠자리와 머리 두는 방향

어느 방에서 누가 자는가는 집의 규모와 가족구성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잠자리를 전체적으로 관찰하면 어느 정도의 규칙을 발견할 수 있다. 소농의 안방은 부부만이 자는 집이 1가구,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딸이 함께 자는 집이 1가구가 있다. 큰 농가의 경우에는 부부와 아이들이 함께 자는 집이 4가구, 어머니 혼자 자는 집이 2가구이다. 근래 양식의 경우에는 부부만 자는 집이 약간 있고, 부부와 딸들이 함께 자는 집이 3가구, 어머니만 자는 집이 1가구, 할머니와 어머니, 어린아들과 딸이 함께 자는 집이 가끔 있다. 종합적으로는 안방에서 부부와 어린 아이들이 자는 집이 12가구로 가장 많고, 그다음은 부부만이 자는 집으로 6가구, 부부와 다 자란 딸이 자는 집이 8가구이며 다른 여러 경우들은 한두 집에..

중세 한국의 가옥(대농 형식)

중세의 대농이란 봉건적인 체제 아래 경제적, 경제 외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었던 지주 계층을 의미한다. 고려 시대에는 몇몇 문벌 중심의 중앙 귀족과 지방의 토호들이 대부분의 농경지를 소유했고, 조선 시대에는 사대부 및 양반들이 지주 계급을 형성했다. 그러나 조선 봉건 체제가 흔들리고 자본주의의 기운이 싹트던 주선 후기에는 사회적, 신분적 제약을 벗어난 일반 상민 계급에서도 지주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 글에서 다루는 봉건 시대의 대농은 고려부터 조선 말기까지의 지주를 의미한다. 대농형식의 집은 중농이나 소농형식의 집에 비해 경제력이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집은 그 경제적 사정보다는 취미나 기호에 따라 지어진 경향을 보여준다. 이러한 집은 지주 계층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을 반영하며, 대농이..

중세 한국의 가옥 (중농 형식)

ㄱ. 일자(一字) ㄷ자형 이 집은 일자(一字) 모양의 안채와 행랑채 및 헛간채가 마당을 중심으로 ㄷ자 형태로 배치된 집이다. 일자 ㄷ자형 ㄱ자채집은 안채와 행랑채가 ㄱ자 모양으로 배치되고 헛간채는 안채 맞은편에 놓여진 구조다. 이런 집은 보통 안채와 행랑채로 구성된 2자 집을 지은 후 나중에 사랑채를 추가하여 ㄷ자 모양을 이루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에 있는 김연재씨 집을 들 수 있다. 이 집의 안채는 남쪽에서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지게 앉아 있는 미좌(坐) 축향(丑向) 방향으로, 맞걸이 3량 구조의 배집 형식이다. 안방과 웃방은 토담으로 벽을 쌓았고, 부엌은 뼈대식 구조로 되어 있어 독특하다. 평면에서는 부엌이 오른쪽에 배치되고, 가운데는 한 칸 크기의 안방, 왼쪽에는 웃방이 놓인다..

중세 한국의 가옥(소농 형식)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국내외 사학계에서는 역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생산력의 확대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한국사의 시대 구분도 과거의 왕조 중심이 아닌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구조의 획기적인 변화에 초점 을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한국사를 다루는 데 있어 또 다른 큰 논쟁은 한국에 봉건사회가 존재했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 문제는 한국 자본주의의 시작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 형태는 서양의 그것과는 다르지만 고려와 조선 왕조 사회가 본질적으로 봉건사회였다고 결론이 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이론이 한국사에서 아직도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민가의 역사란 생산력의 증가에 따른 공간 확대의 역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경제사적 시대 구분론에 맞춰서 ..

한국 전통 6칸정형식 가옥 (제주형)

제주형 집은 앞의 두 가지 형과는 전혀 달라서 6칸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곤란한 집이며, 실제로 제주도에서도 이 집은 3칸집이라고 불린다. 집의 규모는 다른 집과 다를 바 없으나, 앞서 설명한 집들은 구조가 3평주(柱) 3량(樑)이고 평면이 결합방식으로 처리된 데 비해, 후자는 2고주(高柱) 7량(樑)으로 법식화되어 있으며, 평면도 분할식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고 구조기법이 전혀 다른 것은 아니고, 모두 같은 맥락에서 발전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집들은 시대가 지나면서 간편한 방법을 사용하게 된 것이고, 후자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오히려 이 점이 더욱 잘 유지되어, 평면의 형태에서도 독특한 발전을 거듭했으리라 추측된다. 따라서 이 집이 안동형보다 옛방식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형의 평면 구성은 ..

한국 전통 6칸정형식 가옥 (영동형, 안동형)

6칸정형식의 집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된 6칸 집으로, 평면 형태와 구조, 가구 기법이 정제된 양식을 띤다. 이 집에는 소작 겸 자작 혹은 자작이 가능한 소농이 거주하였으며, 이는 고대의 양인 계층이나 중세 시대의 소작인, 혹은 자영농에 해당하는 계층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집은 태백산맥을 따라 남부 산간지대와 동쪽의 관북, 관동, 영동지방은 물론, 안동, 김해, 제주도에까지 분포하며, 서해나 남해의 해안지방에도 드물게 나타난다. 이 집들이 분포한 지역은 국가의 치안력이 미치기 어려운 변방이자, 생산력이 낮은 지역이었다. 따라서 봉건적 착취가 비교적 덜했으며, 그 결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자영농이 많이 분포하였다. 치안이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도둑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집은 자연히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