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속 문화

먹과 제지

solid-info 2025. 4. 17. 11:38

 

먹과 제지

1. 먹(墨)

 먹은 매연으로 만든다. 먼저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을 모아 응고시킨 다음, 동유나 청유와 섞어 뭉쳐서 만든다. 기름은 아주 적은 양만 들어가고 대부분이 송연이다. 대개 동유나 청유는 1할 정도, 송연은 9할 정도이다. 따라서 먹은 송연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주에서 나는 송연으로 만든 먹을 가장 우수한 것으로 쳤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때에 안휘성의 휘주에서 만드는 먹이 가장 품질이 좋다고 알려졌다. 기름을 태워 그을음을 만들 때, 기름 1근에서 그을음이 1냥 정도 나온다고 한다. 숙련된 사람은 한 사람이 200개의 등불 접시를 사용해 작업을 하면서 그을음을 낸다고 한다. 만약 그릇에서 그을음을 채취할 때 천천히 태우면 먹의 성분이 다 날아가버리기 때문에, 그을음이 날아가기 전에 빠르게 채취해야만 좋은 먹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만드는 먹은 먼저 송진을 모두 제거한 뒤 나무를 베어야 한다. 송진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그것으로 만든 먹은 끝까지 송진의 찌꺼기가 남아 있어 껄껄해진다. 송진을 빼는 방법은 먼저 나무뿌리나 나뭇줄기에 작은 구멍을 뚫어 불을 서서히 붙여 송진이 뜨뜻한 곳으로 흘러내리게 하여, 끈적한 송진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 장작에서 그을음을 채취하려면 소나무 장작을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긴 대나무 올을 비닐하우스처럼 세우고 종이와 가마니 등으로 완전히 봉한다. 그 안에 작은 구멍을 뚫어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하고, 그 밑에는 벽돌로 연기가 빠지는 통로를 만든다. 겉에서 보면 질그릇을 굽는 가마처럼 보인다. 며칠 동안 소나무를 태워 연기가 다 빠져나간 뒤 한 번 차게 식히면 그을음이 떨어지는데, 이것을 모두 모은다. 송연에서 얻는 유연은 불을 때서 가마 앞머리에서 끝까지 유연이 통과해야 한다. 이때 끝부분에서 얻어진 그을음은 가장 좋은 것으로 청연이라 한다. 그 다음 중간에서 얻은 그을음은 혼연이라 하며, 이는 우리가 보통 쓰는 먹의 재료가 된다. 청연 가운데 남은 것들은 연자라 하여, 옻칠하는 사람이나 미장이들이 흑색 도료로 사용한다.

 

 송연으로 먹을 만들 때, 물에 넣어 보아서 뜨는지 가라앉는지를 확인하여 품질을 점검한다. 좋은 먹일수록 물에 잘 가라앉는다. 아교를 넣을 때 그 양도 중요하다. 아교가 적당히 들어가면 단단한 먹이 되어 좋다. 또한 향료를 넣을 때 금가루를 넣어 글자를 쓰거나, 사향을 넣어 약간의 향기가 나도록 조절한다. 송연이나 유연을 만들 때 아교와 향료가 제대로 들어갔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상의 제조법은 명나라의 송응성이 『천공개물(天工開物)』에서 인용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다. 먹에 관한 참고 기록으로는 송나라의 조관지가 『묵주(墨注)』에서 먹의 역사와 제조 방법을 기록하였고, 이효미가 쓴 『묵보(墨譜)』에는 먹의 제조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먹 제조법이 구체적으로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해주묵'이 좋은 것으로 여겨져 '참먹'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제조 방법이 부족해 제대로 된 먹을 만들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참먹은 향기가 좋고 잘 부서지지 않으며 광택이 난다고 한다. 좋은 먹은 중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다고 하며, 그 위에는 대개 큰 용을 그렸고 제조자의 이름까지 새겨져 있었다.

 

 일본제 먹으로는 홍화묵이 가장 좋다고 한다. 이는 고매원(古梅園)의 임삼익이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식 먹이 거의 없으며, 무명인이 만든 먹이 많아서 참먹을 구하기 힘들다. 최근에는 붓글씨를 쓰는 사람이 줄어들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묵즙을 많이 사용하는 추세이다.

 

 


2. 제지

 종이의 재료로는 닥나무껍질, 뽕나무껍질, 또는 목부용의 껍질을 사용한다. 한나라의 채윤이 종이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바 있으며, 그 이전에는 나무껍질이나 대패껍질에 글을 썼다고 하는데, 이를 '피지'라고 했다. 또한 대나무 섬유로 만든 종이를 '죽지'라고 하며, 이를 정제하면 흰색이 되어 백지가 된다. 백지는 인쇄나 편지지용으로 쓰였으며, 종이 중에서 가장 품질이 좋다고 여겨졌다.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종이는 화지라고 하여 불쏘시개나 포장지로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기에 조지서(造紙署)를 두어 종이를 만들어 사용했다. 조지서에서는 주로 백지를 만들었으며, 이곳에서 만든 종이가 가장 품질이 좋았다고 한다. 현재의 세검정 근처가 조지서가 있던 자리로, '조지세'로 불리기도 했다.

 죽지는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대나무가 많이 자라는 중국 남쪽 복건성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었다. 질 좋은 대나무를 5자에서 7자 길이로 자른 후, 저수지에 넣어 약 100일 정도 썩히고 나서 대쪽을 탁탁 쳐서 표피와 청피가 떨어지게 한다. 그 후, 좋은 석회를 물에 섞어 체로 걸러 큰 통에 받은 후, 밤낮으로 불을 때면 종이의 원료인 끈적끈적한 액체로 변한다. 이 액체를 이용해 종이를 한 장씩 떠낸다. 이 죽지는 서울 근교의 조지서에서도 많이 만들어졌다.

 

 백지는 대체로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좋은 종이를 만들기 위해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세조는 불교를 중시하는 군주로서 대장경을 인쇄하였고, 이 작업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대장경판이 해인사에 있었기 때문에 세조는 먼저 대장경을 인쇄하는 데 필요한 백지를 만들어야 했다. 왕은 각도에 영을 내려 백지를 조달하도록 하였으며, 전국의 명산 대찰에 고루 나누어주기 위해 50부씩 인쇄하였고, 이로 인해 종이의 수요가 급증하였다. 이 막대한 양의 종이를 만들기 위해 각도에서 인원을 차출하고, 먹을 양식도 거두어들이며, 2월에서 4월까지 3개월 동안 중들이 종이를 모았다. 그 결과 38만 8900첩의 종이가 완성되었고, 전국의 닥나무가 바닥날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 종이는 매우 귀한 것이었으며, 옛날 편지를 쓸 때 여백만 있으면 그곳에 글을 덧붙여 종이를 최대한 활용했다. 당시 서당에서 공부하던 학동들은 귀한 백지를 쓰지 못하고, 분판이라는 도구를 만들어 글씨를 익혔다. 분판은 밀기름을 여러 번 칠하여 말린 후 그 위에 글씨를 쓰고 다시 지워가며 여러 번 연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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