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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수산 문화(채취)

1. 굴 따기 굴은 우리 민족이 옛날부터 식용으로 많이 이용해 왔다. 그 증거로는 각 지방에서 발굴되는 패총(조개껍질 무덤)에서 알 수 있다. 우리나라 해안 근처에서 발굴되는 패총은 대부분 굴껍질과 백합껍질로 이루어져 있다. 일제 시대, 경도제국대학에서 발굴한 김해패총의 경우, 이 대학 이학부 조수인 쿠로다 토쿠메(흑田덕미)의 감정 결과, 패류 34종(담수산패류 5종 포함)과 갑각류 5종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 대부분이 굴과 백합껍질이었고, 굴은 참굴로 길이가 약 1척(약 30cm), 백합은 직경이 4촌(약 12cm) 이상 되는 대형이었다고 한다. 옛 기록에는 굴을 모려(牡蠣), 여방(蠣房), 여합(蠣蛤), 모합(牡蛤), 호(呼), 고분(古賁), 석화(石花)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 농경 문화

우리 나라는 동해 근처 북쪽에서 남쪽으로 태백산맥이 뻗어 있고, 서쪽으로 흐르는 작은 산들 사이에는 좁지만 비옥한 평야가 펼쳐져 있어 일찍부터 농업이 발전했다. 지리적으로 온대 지역에 속하며 기후는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이로 인해 풍토도 매우 다양하다. 좁은 이 땅에 열대나 온대식물은 물론, 지중해성 식물과 사바나 식물까지 합해 300여 종이 재배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자연적인 혜택 덕분이다. 우리 농업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신석기 시대 후기에 조와 피가 생산되었고, 청동기 시대 초기에 벼농사가 시작되었으며, 이후 기장, 수수, 콩, 팥 등이 재배되었다. 특히 벼농사는 우리나라 남부 지역에서 김해 시대에 이르러 일반화되었다. 삼국 초기부터 벼농사의 중요성은 크게 인식되었으며, 『삼국사기』의 신라..

민속 가구 소개 (빗접과 궤경대, 상 & 탑과 의자, 궤)

1. 빗접과 궤경대(櫃鏡臺) 빗접은 퇴발낭(머리카락을 받기 위해 사용하는 사방 80~90cm 크기의 천), 빗, 빗솔, 빗치개 등을 보관하는 제구로, 유리거울이 나오기 이전에 사용되었다. 궤경대(경대)는 좌경 또는 경대라고도 하며, 유리거울이 보급된 이후 빗접에 거울을 부착한 것으로, 빗의 발전된 형태라 할 수 있다. 빗접은 소함(梳函)이라고도 불리며, 주칠(붉은색 칠)과 나전칠기 제품이 많은 편이다. 세종 임금 때에도 나전 소함이 제작되었다. 남성용은 매우 작지만, 여성용은 대개 3단 서랍이나 2단 서랍과 1단 칸으로 구성된 두 가지 양식이 있다. 잠금장치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값비싼 수식품도 보관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조선시대 나전 빗접은 중국과의 중요한 교역품이었다는 사실은 『지봉유설』에 기록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