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방
일반적인 한국 주택의 공간은 여성이 거처하는 안방(안채)과 남성의 거실인 사랑방(사랑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집안 살림을 맡은 아내가 나이든 어머니를 모시고 출가하지 않은 딸과 어린 자녀들과 함께 살며, 가족의 음식 준비와 옷 마련 등 살림을 총괄하던 가정의 중심 공간으로, 직계가족 이외의 남성은 들어올 수 없는 닫힌 공간이다.
안방은 안주인의 생활이 대부분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신분에 알맞게 꾸며졌고 서민의 집과 상류층의 집에 따라 그 규모와 시설에 차이가 있다. 안방은 대체로 두 칸으로 넓게 활용하지만, 때로는 그 가운데에 장지를 달아 여닫을 수 있게 하기도 한다. 규모가 큰 집의 경우에는 방 뒤쪽에 반 칸 넓이의 작은 방을 들여 장이나 농 같은 것을 보관하고, 조금 더 격식을 갖춘 집은 방 옆면에 방과 같은 길이의 두 칸짜리 측방을 마련하여 가구를 놓고 침실로 사용하기도 한다.
안방은 대부분 부엌과 붙어 있어 방의 아랫목 벽에는 두 짝으로 된 작은 여닫이문이 달린 작은 벽장을 두고, 그 옆에는 한 개의 여닫이문을 달아 부엌 천장을 다락으로 활용하거나, 네 짝으로 된 미닫이문이 달린 벽장을 만들어 그 안에 턱을 두어 다락에 오르게 하여 벽장과 다락을 함께 쓰도록 한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윗목에 가구를 놓게 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서민의 집의 경우, 부엌과 연결된 안방의 바닥은 흙바닥에 삿자리를 깔거나 장판지로 마감하였다. 벽과 천장은 흰종이로 바르지만, 천장에는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경우도 있다. 아랫목에는 겨울 이불을 깔고 한쪽 벽면에는 횃대를 매달아 옷을 걸어 둔다. 윗목이나 옆 벽을 따라 머릿장이나 반다지를 놓고, 그 옆으로 2단 또는 3단 장롱과 옷장 등을 나란히 붙여 둔다. 머릿장이나 반다지 위에는 개켜 놓은 이불을 올려놓고, 장 위에는 함을 얹는다. 건넌방은 나이든 어머니나 자녀가 사용하며, 이곳에도 반다지와 머릿장 또는 이불장을 두었다.
상류 가정의 경우, 방바닥은 온돌에 장판지로 마감하고 벽면은 전주산의 간장지, 남원산의 선자지, 영변산의 백로지, 평강산의 설화죽청지 등 흰색의 고급 종이로 도배하였으며, 가장 좋은 도배는 백능화지로 하는 것이었다. 천장은 청색, 녹색, 푸른빛의 능화지로 바르고 굽도리를 하였다. 겨울이면 아랫목과 측면의 방문에 곽분양이라는 당나라 명장의 즐거운 삶을 그린 그림이나 백자천손도, 요지연도처럼 자손의 번성과 복을 기원하는 그림을 그린 병풍을 둘렀으며, 아랫목에는 방석을 깔고 작은 의자를 둔다. 여름에는 방문에 발을 드린다.
안주인이 글을 배운 지식인이면 아랫목 자리 앞에 작은 책상을 놓고 벼루, 붓통, 종이통, 붓, 먹 같은 문방용품을 두며, 문갑과 탁자장도 마련하여 책을 읽거나 자녀를 가르치며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벽에는 빗과 고비(머리 장식)를 걸고 윗목이나 윗방에는 장과 농을 배치한다. 장 위에는 함이나 상자를 얹고, 장 아래에는 세숫대야나 요강을 둔다. 건넌방에는 집 규모에 맞게 윗목에 2단 또는 3단 장과 반다지 등을 갖춘다.
바느질 도구인 반짇고리를 비롯하여 바늘, 실패, 인두판, 인두, 가위, 다리미 등 재봉도구는 안방 살림뿐만 아니라 건넌방 살림에서도 꼭 필요한 것이며, 중요하게 여겨졌다. 불씨를 보관하고 바느질을 할 때 쓰는 화로, 불빛을 밝히는 촛대와 등잔도 필수품이다. 또 흡연을 하는 부인의 경우에는 긴 담뱃대, 재떨이, 담배통 같은 담배 기구도 갖추었다.
화로는 대개 시골에서는 질화로나 무쇠로 만든 화로가 쓰였고, 이 중에서도 질화로가 가장 널리 쓰였다. 좀 더 고급스러운 것으로는 놋쇠 화로나 돌로 만든 화로가 있었는데, 이들은 대체로 도시나 부유한 시골 가정에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2. 대청
한옥에서 대청은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으로, 집안의 크고 작은 행사를 이곳에서 치른다. 따라서 안채의 대청이든 사랑채의 대청이든, 대청은 비교적 열려 있고 사람이 오가는 일이 많은 공간이 된다. 대청은 방보다 넓은 것이 특징이며, 바닥은 대부분 우물마루로 되어 있어 특히 여름철을 중심으로 봄과 가을에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그 넓이는 작게는 한두 칸에서 많게는 여섯 칸에 이르기까지, 집의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서민 주택의 경우 안방 옆에 붙은 대청에는 찬장과 뒤주를 두고, 벽면에는 시렁을 달아 소반을 올려놓고 들보 사이에 놓은 시렁에는 제사상을 올려두기도 한다. 뒤주 뒤쪽 널판에는 용무늬가 그려진 항아리와 장아찌, 젓갈, 꿀 등 밑반찬과 간식거리를 담은 크고 작은 백자 항아리를 두세 층으로 겹쳐 쌓아 두는 등, 모두 음식과 관련된 살림살이를 두었다. 찬장과 찬탁은 대청뿐 아니라 부엌의 찬마루나 찬방에도 갖추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대청에 놓인 살림살이는 부엌 살림이며 결국 부엌살림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규모가 큰 집의 대청에는 가구를 따로 두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도시나 시골을 막론하고 대청에 시렁을 다는 일만큼은 꼭 빠지지 않고 갖추는 설비였다.
3. 사랑방
남성의 거주 및 활동 공간은 외실이라고도 불리는 사랑이다. 이곳은 남성의 침실이자 거실이며 서재로 쓰이기도 하고, 손님을 맞는 응접실 역할도 겸하였다. 규모가 작은 서민 주택에서는 집 바깥쪽에 면한 온돌방 한 칸을 사랑으로 정해 서재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안채와는 별채로 사랑채를 지은 형태가 전통적인 한옥의 일반적인 구성이다. 규모가 큰 양반가에서는 방과 마루가 번갈아 배치된 안사랑과 바깥사랑이 있으며, 바깥사랑의 울타리 안이나 담장 밖에는 ‘재사’라 불리는 별도의 서고 겸 서재를 따로 두기도 한다. 집안에 작은 동산이 있는 경우, 전망이 좋은 곳에 ‘산정사랑’을 따로 배치하기도 한다. 안사랑은 은퇴한 노부부가 거처하는 공간으로, 안채와 연결되도록 짓는 것이 보통이다. 산정사랑은 집안 어른의 조용한 연회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며, 이곳과 안사랑에는 서재를 따로 꾸미지 않는다. 바깥사랑은 집안의 가장이 사용하는 공간으로, 침실과 방(사랑), 마루(청), 누마루로 구성되며 이 중 방이나 누마루를 서재로 꾸며 ‘문방’이라 불렀다. 성장한 아들을 위해 바깥사랑에 온돌방을 하나 더 마련하면, 가장의 사랑방은 ‘큰사랑’, 아들의 방은 ‘작은사랑’이라 구분하고 작은사랑을 문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문방은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 초기 선비나 양반들이 필수적으로 갖추던 공간이었다. 17세기 이후 중국 송나라와 명나라에서 편찬된 문방청완에 관한 책들이 조선에 소개되면서, 사랑방 가구 양식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영조와 정조 시기에는 주택 양식이 더욱 세련되어지고 문예 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문방이 일반 가정에도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인다. 정조 3년(1783) 11월 27일 자의 『내각일력』에 따르면, 같은 해 11월 1일에 실시한 화원 시험의 화제(그림 주제)로 문방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경도잡지』와 『임원경제지』 등 이 시기에 편찬된 여러 책에서도 문방이 항목으로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문방에 대한 지배층의 관심과 일반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문방의 꾸밈은 이 공간의 주인이자 선비인 양반들의 취향을 반영하여 정리되었다. 조선시대 선비와 양반들은 비록 재산이 많더라도 사치스러운 꾸밈은 속된 것으로 여겼으며, 단정하고 맑은 멋을 추구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유교 윤리에 맞는 청렴하고 검소한 사랑방을 꾸미고자 자연스럽고 수수한 나무 재질의 가구를 선호하였고, 이러한 취향은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사랑방에 놓인 가구로는 책상(서안), 문서를 넣는 궤짝(문갑), 사방탁자, 책장, 궤짝, 다양한 받침대와 연적상(연갑), 협탁(안상) 등이 있으며, 벽에는 두루마리나 편지를 꽂아 두는 ‘고비’를 걸었다. 신분이 높은 양반가의 사랑채에는 큰사랑, 작은사랑, 누마루, 침실, 서재, 대청 등이 함께 있어 평상과 의자 같은 가구도 추가로 배치되었고, 옷걸이장도 놓았다. 사랑방이나 서재는 보통 두 칸을 터서 만든 긴 방으로, 그 윗방에 책상과 책장을 놓거나, 넉넉한 집안에서는 아예 별도로 책방이나 서고를 마련하기도 한다. 때로는 골방을 크게 만들어 그 안에 책가구를 넣기도 하였고, 보관함이나 작은 장은 벽장이나 다락에 두기도 했다.
문방의 내부는 이에 걸맞게 단정하게 꾸며졌다. 벽지는 하얀 종이로 마감하고, 천장은 푸른빛이나 회녹색의 단색 종이로 도배하였으며, 마루 바닥은 기름을 먹인 장판 위에 콩기름을 덧바르고 깨끗함을 유지하였다. 서화는 양쪽 벽에 대칭으로 걸지 않고, 좌우 균형을 맞춘 장식은 속되다 하여 피했으며, 병풍 역시 보기 좋지 않다 하여 잘 쓰지 않았다. 병풍은 보통 사랑방 옆의 침실 머리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선비의 청렴하고 곧은 마음은 사랑방에 놓인 문방사우(종이, 붓, 벼루, 먹)와 가구에서도 드러나며, 화려한 장식이나 과한 배열은 피하였다. 주인의 자리는 아랫목에 보료를 깔고, 그 앞에는 작은 상이나 책상과 연적상을 놓았으며, 좌우 벽에는 문갑을 두고 그 위에 붓통, 종이통, 연적 등을 정돈하였다. 사방탁자나 책장은 벽에 붙여 놓아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였고, 붓걸이와 고비는 벽에 따로 걸었다. 그 외에도 무쇠 촛대, 나무 등잔, 손난로, 향로, 향상, 담배 도구 같은 것들도 갖추었다. 또 주인의 취향에 따라 수석, 난초 같은 장식품이나 거문고, 퉁소 같은 취미용 기물도 놓았다.
사랑채 대청에는 양쪽에 자기나 골동품을 올려놓는 삼각탁자나 사방탁자가 있고, 중앙에는 보조탁자와 함께 놓인 꽃무늬 의자와 상을 마련해 손님을 예우하였다. 사랑방 가구의 성격은 한마디로 단정하기 어렵지만, 한 시대의 문화와 생활 양식을 드러내는 척도이자, 주인의 교양과 안목, 가풍과 전통, 재력을 보여주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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