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속 문화

한국 전통 6칸정형식 가옥 (영동형, 안동형)

solid-info 2025. 3. 25. 14:22

주거환경 - 6칸정형식(영동형, 안동형)

 

 6칸정형식의 집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된 6칸 집으로, 평면 형태와 구조, 가구 기법이 정제된 양식을 띤다. 이 집에는 소작 겸 자작 혹은 자작이 가능한 소농이 거주하였으며, 이는 고대의 양인 계층이나 중세 시대의 소작인, 혹은 자영농에 해당하는 계층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집은 태백산맥을 따라 남부 산간지대와 동쪽의 관북, 관동, 영동지방은 물론, 안동, 김해, 제주도에까지 분포하며, 서해나 남해의 해안지방에도 드물게 나타난다.

 

 이 집들이 분포한 지역은 국가의 치안력이 미치기 어려운 변방이자, 생산력이 낮은 지역이었다. 따라서 봉건적 착취가 비교적 덜했으며, 그 결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자영농이 많이 분포하였다. 치안이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도둑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집은 자연히 외부에 대해 폐쇄적인 형태로 지어졌다. 또한 이러한 집은 부리는 사람 없이도 생활이 가능하도록 주부의 동선을 짧게 고려한 평면 구성을 갖는다. 반면, 서부 지역에서 유행한 곱은자집은 부리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집으로, 예를 들어 마루와 부엌 바닥 간의 높이 차가 크기 때문에, 주부가 직접 상을 들고 오르내리기엔 불편하나, 부림을 받는 사람이 상을 올리거나 가마를 탄 주인이 쉽게 오르내릴 수 있게 되어 있다.

 

 

ㄱ. 영동형(嶺東型)

 영동형 집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5칸집 형태이지만, 3칸 일자집처럼 부엌이 한쪽으로 치우쳐 상하 2칸을 차지하며, 나머지 공간은 밭전(田)자 모양으로 구성되어 기능적으로 분할된다. 이 집은 태백산맥 동쪽, 원산에서 울진에 이르는 영동지방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며, 지역명을 따라 ‘영동형’이라 불린다.

 

1. 6칸마루집

 6칸마루집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진 6칸 양통집으로, 중앙에 마루를 둔 것이 특징이다. 주로 강릉 이북의 동해안 지역에 분포하며, 대표적인 예로는 강원도 명주군 사천면 사천진리의 방재전씨 집이 있다.

 

 이 집의 안채는 남쪽에서 약간 동쪽으로 기운 임좌병향(壬坐丙向)이며, 긴 변을 전면으로 한 직사각형 평면에 3평주 3량의 양통구조를 가진다. 지붕은 초가지붕에 합각 처리된 형태로, 이는 태백산맥을 따라 널리 퍼져 있으며 영동지방에서 일반적인 방식이다. 합각지붕은 모임지붕보다 빗물 처리는 어렵지만, 구조적 결함을 보완하고 부엌 연기 배출을 위한 환기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평면 구성은 정면을 셋, 측면을 둘로 나누며, 왼쪽 두 칸은 부엌, 가운데는 앞쪽에 마루와 뒤쪽에 안방, 오른쪽은 앞에 사랑방과 뒤에 도장으로 구성된다. 이 구조는 다음에 설명될 6칸구들집과 달리, 마루가 중앙에 있고 안방이 그 뒤에 배치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며, 이는 안동형 주택의 특징과 유사하여 이 형식이 더 오래된 형태임을 짐작케 한다. 이 집에는 외양간이 없는데, 이는 어업을 주요 생업으로 삼기 때문이며, 앞마당이 없는 점에서도 반영된다.

 

 부엌은 상하 두 칸을 통으로 사용하며, 뒤쪽 칸에만 부엌 설비를 두고, 앞 칸은 봉당이라 불리는 실내작업 공간으로 활용된다. 봉당은 함경도에서 안동에 이르는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가내 작업 공간이다. 부엌바닥은 뜰팡보다 낮고, 단을 두어 부뚜막처럼 구성하며, 문 앞에는 디딤돌을 놓았다. 마루는 부엌 쪽으로 개방되어 있고, 세로로 끼워맞춘 우물마루 형태로 바닥을 구성하였다. 안방과 사랑방, 도장은 모두 한 칸 크기의 직사각형이다.

 

 집 앞에는 마루 없이 뜰팡만 두고, 헛간채는 따로 마련하지 않았으며, 앞마당은 마을길을 겸하고, 뒤안은 담장을 둘러 외부와의 단절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이 집은 8대째 이어져 오고 있으며, 집주인에 따르면 약 210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2. 6칸중앙구들집

 6칸중앙구들집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6칸 양통집으로, 기존의 마루 자리에 구들을 설치한 집이다. 주로 강릉에서 울진까지 동해안 지역의 농민들이 거주하며, 대표적으로 강원도 명주군 성산면 보광리의 최태집씨 집을 들 수 있다.

 

 이 집은 동남향인 건좌손향(乾坐巽向)이고, 3평주 3량의 양통구조를 가지며 ㄱ자 형태로 되어 있다. 긴 변과 ㄱ자의 안쪽을 마당 쪽으로 향하게 배치하였다. 평면은 세로로 셋, 가로로 둘로 나누어 오른쪽 두 칸은 부엌, 그 옆은 앞에 안방(구들), 뒤에 뒷방, 그 옆은 앞에 사랑, 뒤에 도장으로 구성된다. 부엌 앞에는 한 칸 크기의 마굿간이 ㄱ자 형태로 붙어 있고, 사랑과 구들 앞 및 사랑 옆에는 작은 쪽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집주인에 따르면 이 지역 농가는 대개 이와 같은 평면을 가지며, 한 칸의 가로 길이는 8~9자, 세로는 8자이며, 외통집일 경우 세로를 10자로 하기도 한다. 이는 이 지역에서 도리 방향을 ‘내림’, 보 방향을 ‘가름’으로 본 것과 관련된다. 부엌은 상하 두 칸을 쓰며, 도리 방향으로 반 칸, 마굿간 쪽으로도 반 칸을 확장해 공간을 넓혔다. 부엌 문은 측벽으로 내어 뜰로 통하게 하였으며, 마굿간은 일반적인 곱은자외체형과 달리 정식 3량 구조로 도리를 걸어 ㄱ자로 덧댄 것이다.

 

 지붕은 모임지붕이 아닌 박공 형태로 만들어져 양옆으로 빗물이 떨어지도록 했으며, 마굿간의 종도리는 본채의 처마도리에 걸쳐 단차를 둠으로써 구조적 안정과 배수 문제를 해결하였다. 본채는 높은 토방 위에, 마굿간은 낮게 지어졌으며, 부엌도 뜰팡까지 이어지게 설치되어 있다.

 

 구들은 부엌 옆 앞쪽에, 뒷방은 그 뒤에, 사랑은 왼쪽 옆에, 도장은 뒷방의 왼쪽에 배치되며, 구들과 사랑의 앞, 사랑의 옆에는 너비 2.8자의 쪽마루가 설치된다. 쪽마루는 해안지방보다는 내륙지방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이는 해안의 거센 비바람을 고려한 결과다.

 

 이 집 역시 논농사가 없는 지역의 일반적 특징처럼 헛간채는 없고, 뒷간은 마굿간 건너편에 위치하며, 그 옆에 노천 퇴비장이 있다. 벽은 모두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담장은 집 주변을 두르고 있다. 대문은 별도로 설치되지 않고 사랑방 옆 통로를 통해 드나든다. 마당 한쪽에는 짚가리가, 대문 옆과 뒤안에는 나무가 몇 그루 심겨 있다.

 

 집은 약 50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초가지붕이지만 합각 형태를 띤다. 평면 구성은 강릉 지역의 전형적인 1세대 주택 형태를 따르며, 최근에는 뒷방과 도장의 너비가 점차 줄어들며 충청도식 골방 형태로 변화하는 경향도 보인다. 이는 충청도에서 골방이 겹집 양통화되어 가는 현상과 대조된다.

 

 

ㄴ. 안동형

 이 집은 역시 정면 3칸, 측면 2칸의 6칸집이긴 하지만 영동형과는 달라서 중앙의 상하 2칸이 통이 되어 봉당과 마루가 깔리고 양측의 끝방이 넷으로 나뉘어져서 각각의 기능에 맞는 방으로 된다. 이 집이 영동형과 다른 점은 앞의 경우 살림방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만 뒤의 경우는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고, 앞의 부엌이 상하 2칸인 반면 이쪽은 앞쪽이 한 칸이거나 아니면 중앙 봉당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또한 집안에 외양간을 설치할 경우 앞의 경우 부엌 쪽에 붙여 ㄱ자로 덧달아내고 있지만 여기서는 건물 내부 봉당에 붙여 시설하고 있다. 이런 점을 미루어볼 때 안동형이 오히려 영동형보다 옛 방식이라고 믿어지는데, 이런 근거를 더욱 뒷받침하는 것은 이런 형의 집이 함경도에 분포하는 집들이나 산간벽지에서 볼 수 있는 사방집(세마루집)과 유사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안동형은 그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안동을 주변으로 하는 안동문화권에 속하는 지방에 분포하는데, 오래된 집들이 대부분으로 그 숫자는 많지 않으며 이런 집을 이용하는 계층은 대부분 소작농과 자영농들이다. 안동형 주택의 예로서 6칸 중앙툇마루집(마구집)을 살펴본다.

 

 이 집은 세로 3칸, 가로 2칸의 6칸 양통집으로서 중앙 뒤쪽에 마루가 배치되고 집안에 마굿간이 시설되는 평면 배열을 가졌다. 여기서는 김종철 씨 집(경북 안동군 예안면 서양동)을 표본으로 삼아 그 구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평면은 긴 네모꼴로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집과 마찬가지로 긴 변을 전면(前面)으로 삼는다. 간살이는 앞쪽을 셋으로 나누고 옆쪽을 둘로 나누어서 6개의 간을 만든 다음, 오른쪽 앞칸은 부엌(정주)과 뒤칸은 안방으로, 가운데 앞칸은 봉당과 뒤칸은 마루(마리)로, 왼쪽 앞칸은 아래를 외양간(마구)으로 하여 위는 다락을 만들고 뒤칸은 상방을 배치하고 있다. 부엌은 안방을 크게 하기 위해서 앞으로 벽을 2자 가량 들여쌓은 한편, 앞벽은 처마 밑을 이용하여 2자 4치 앞으로 내쌓음으로써 공간을 크게 쓰고 있다. 여기서 내쌓은 공간은 수납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부뚜막 위로 안방의 수장공간인 벽장을 두었다. 안방은 부엌 쪽으로 2자를 늘리고 뒤쪽으로 1자 9치를 내쌓아 가장 큰 방이 된다. 뒤쪽으로 늘린 부분은 봉당이라 부르고 물건을 넣는 곳으로 이용된다.

 

 봉당의 벽은 앞에만 설치되었을 뿐 부엌과 마루 쪽은 개방되어 있으며 마굿간 쪽은 구유(소죽통)로써 경계를 삼고 있다. 구유통은 2자 가량 안쪽으로 들여넣어 설치함으로써 봉당을 크게 쓰고 있다. 마루는 가운데칸의 뒤 간살로서 이 집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며, 가운데 기둥보다 2자 정도 봉당 쪽으로 더 내달고 있다. 마구는 왼쪽 앞칸을 상하 둘로 나누어서 아래를 이용한 것이고 봉당 쪽에서 구유를 마굿간 쪽으로 들여민 만큼 측벽을 밖으로 2자 6치 내쌓았다. 이것은 마굿간 부분만 밖으로 내민 것으로 그 위는 눈썹지붕을 해 덮었다. 다락은 마굿간 위에 설치되는 것으로서 바닥은 지름 10cm 정도의 둥근 통나무를 가로질렀다. 상방은 왼쪽 뒤 간살로서 그 기능은 일자(一字)집의 사랑방과 같다. 이 집 부엌 오른쪽에는 10자 4치의 거리를 두고 두 칸의 사랑채가 안채(원채)와 같은 방향으로 만들어져 있다. 구조는 맞걸이 3량(樑)이며 오른쪽 간살은 사랑방으로, 왼쪽 간살은 다시 가로 방향을 둘로 나누어서 왼쪽은 고방, 오른쪽은 뒤주로 이용하고 있다. 사랑방 뒤에는 5자 5치의 거리를 두고 ㄱ자로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벽을 만들고 디딜방아를 설치하여 방앗간으로 쓰고 있다. 울담은 뒤와 왼쪽 옆에만 설치하고 전면과 우측면 부분에는 만들지 않았으며, 대문 또한 가설하지 않았다. 잿간은 맨 뒤안(또는 뒤끝) 오른쪽 끝담에 이어서 ㄷ자 모양으로 담을 둘러치고 앞을 개방하여 이곳을 이용하고 있다. 뒷간(통시)은 마당 앞 왼쪽 구석에 설치했는데, 이것 역시 ㄷ자로 벽을 쌓아 시선만 차단하고 측면은 개방한 채 쓰고 있다. 마당 앞에는 앞쪽으로 붙여진 짚가리가 여러 묶음 쌓여 있다. 이런 집은 안동지방에만 특수하게 널리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졌었으나, 서해안 지방과 강원도의 태백산맥 줄기 근처에도 비슷한 유형의 집을 간간이 찾아볼 수 있었다.